"언어와 문화"라는 인류학 수업을 들은적이 있는데....그래 언어는 정말 문화다.
"Ich"(나)에 대한 소개. 이름, 나이, 국적, 혼인여부, 언어, 주소, 전화번호 등등의 첫번째 주제가 끝나자, 두번째는 "Meine Familie"(나의 가족)이라는 주제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우리가족" 그리고, 엄마, 아빠, 형(오빠), 누나(언니)에는 늘 "우리"라는 수식이 붙는데, 영어를 비롯한 서양의 언어는 무조건 "나의"가 붙는다. 예전에 일본친구가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그녀는 아들둘을 키우며 그야말로 프로 근성의 전업주부였는데, 우리집에 놀러와서 그 프로의 근성을 들어내며 요리, 청소 등을 도와주었다. 그것을 보고 마르꼬의 미국친구가 "너는 어떻게 그렇게 집안일을 잘해?"하고 물었는데, 일본친구는 "응. 나는 하우스와이프(가정주부)니까!"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미국친구는 "그래도 너는 내 하우스와이프가 아니잖아."하며 우스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안토니오는 한국말을 할때도 꼭꼭 "내 아빠", "내 엄마"라고 하며 우리를 사용하지 않는데, 듣기에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문화적으로 "우리아빠"와 "내 아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독일어에서 가족은 나를 중심으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들, 배우자와 아이들 그리고 조카까지 포함되고, 조금 넓게는 엄마, 아빠의 형제 자매들과 그들의 자식들 그러니까 사촌관계까지 포함된다. 그러니까 책의 예를 보면 한 아이가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동생, 옆으로 이모와 이모부인지, 고모와 고모부인지, 아니면 삼촌과 숙모인지, 외삼촌과 외숙모인지 모를 한쌍의 부부와 그들의 아이 두명이 사촌 대표로 등장한다. 아이들은 둘을 이상형으로 정한듯, 부부와 두명의 자녀를 표본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을 부르는 기본적인 호칭과 그 호칭 앞에 붙는 관사를 배우고, 남자인 경우에는 der를 여자인 경우에는 die를 붙이고, 복수형까지 추가로 설명하고는 각자 가족나무를 그리고 이를 설명해보라는 연습문제를 내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빠 엄마, 삼촌, 고모들과 이모 외삼촌들
마르꼬와 그의 형제, 자매와 내동생과 올케, 나의 사촌과 외사촌들
아들과 조카들, 그리고 오촌관계에 놓여있는 조카(?)들...
정신없이 그리고 설명을 쓰고 나니 노트 한바닥이 가득찼다.
연습문제를 끝내고, 각자 발표를 하고 서로 물어보고 하는 시간이 있는데....
뒤집어질뻔했다. ㅎㅎ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사킵은 삼촌, 고모, 이모, 외삼촌은
트럭으로 실어야 할 정도로 많고, 조카들은 셈이 불가능하다는...아버지가 부인이 몇 명이고, 할아버지 역시 부인이 여럿이어서...그야말로 한번 집안에 누가 결혼한다고 하면 가족 및 친지가 10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네델란드를 포함해서 독일 전역, 유럽 전지역에 자신의 가족, 친지들이 퍼져 살고 있다며 엄청 든든하다고 자랑을 한다. ㅋㅋ
인도계의 아버지와 베네수엘라 출신 엄마를 둔 데빗은 엄마 쪽, 아빠 쪽 친형제 말고 반쪽 핏줄을 나눈 반쪽형제(독일어표현)가 한 다스쯤 된다고 한다. 엄마가 이혼을 해서 엄마를 따라 성장하며, 원래 동생과 엄마가 새로 결혼을 해서 새 아버지와 사이에서의 형제와 또 그 새 아버지가 그 전의 혼인관계에서 데리고 온 자녀들과, 엄마와는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친 아버지가 새로 장가를 가서 생긴 얼굴 모를 반쪽 형제들과....ㅎㅎ 이런 상황에서 보면, 형제자매라도 "내 아빠"와 "내 엄마"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구나 이해가 간다.
언젠가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미국 인류학자가 자기 남편의 딸을 "내 딸이 아니라 남편딸"이라고 확실하게 구분해서 부르는 것을 보고 조금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새 엄마라면 겉으로나마 엄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노력하거나, 그 어색한 역할을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텐데...아주 쿨하게 선을 긋는다.
시에라리온의 옆집 이웃 안티 안넷은 딸 셋이 있는데, 셋의 아빠가 모두 다르고,
가끔 따로따로 딸을 보러 찾아오기도 한다. 밀티의 아빠는 부인이 일곱인가 있었는데,
각 부인들에게서 딸을 하나씩 낳고 새 부인을 얻어서, 첫째이자 유일한 아들인 밀티는
그 상황을 엄청 부담스럽게 생각하며,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않았다.
다시, 독일어 수업으로 돌아오자면...
Ich에 철저히 입각해서, 내 가족은 할아버지, der Opa
엄마die Mutter, 아빠der Vater 그리고 그들의 형제der Onkel, 자매die Tante와 배우자(auch Tanten und Onkel)들 그리고 사촌들 (der Cousin, die Cousine)
나의 형제 der Bruder, 조카 der Neffe
나의 배우자 mine Mann
내 아들 der Sohn 여기까지다.
그러니까, 사촌의 배우자나 그의 자식들은 내 가족은 아니고,
나의 형제자매의 배우자도 가족은 아니다.
그리고 내 배우자의 형제자매와 부모도 엄밀히 따지면 내 가족이 아니다.
그냥 "네 아빠", "네 엄마" 그리고 "네 형제들"인 셈. ㅋㅋ
그래서 부담이 없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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